<광명을 여는 사람들2> 환경미화원 공형석, 김수오

잘나면 얼마나 잘났고, 못나면 또 얼마나 못났을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그러나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기만 하다. 왜 이들을 콩깎지 낀 눈으로 바라보고 괄시를 하고 가시 돋친 말을 할까? 이들은 누구보다 일찍 새벽2시 아니면 4시에는 일어난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지역의 거리를 발 빠르게 정리한다. 환경미화원 공형석(59세)씨와 김수오(56세)씨를 새벽에 만났다.

                      ▲ 환경미화원 공형수, 김수오       씨
▲ 환경미화원 공형수, 김수오 씨
"새벽부터 수고하십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훈훈한 정을 느끼게 한다. 두 사람은 시민들의 이런 말 한마디에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봄눈 녹듯이 녹아내린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마음을 얼게 만드는 한마디가 있다. 3-4살 된 아이가 귀여워 말을 거는 경우가 있는데 “청소부 아저씨랑 얘기하지 말라”며 부모가 아이의 손을 끌고 가면서 내뱉는다. 비수가 되어 가슴 저 깊은 곳에 박힌다. 씁쓸함을 공허한 하늘을 바라보며 쓸어내린다.

공씨는 수퍼를 운영해오다 IMF를 만나 매출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하자 눈앞이 캄캄해지더란다. 더 이상 운영을 할 수 없어 가게를 접고 일반 회사에 들어가려니 나이가 많아 들어갈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환경미화원이었다. 김씨는 사연이 있는 듯 말하기를 꺼려한다.

두 사람이 환경미화원으로 일을 하면서 눈 오고 비올 때가 아닌 가을 낙엽이 떨어질 때 제일 힘들다. 비로 쓸고 돌아서면 어느새 낙엽이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금 이순간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보람이란다.

두 사람은 요즘 힘든 경제를 피부로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어려워도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란다. 언제쯤 어두운 얼굴가득 웃음이 만연할지 모르겠다 말한다. 환경미화원을 모집하는데 대학생들이 지원하는 풍경도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가 되고 있다. 그만큼 힘들다는 것이다.

한 10년 전만 해도 “아파도 아프다는 소리를 못했다”고 한다. 먹고 살기 위해 이를 악물고 모든 고통을 참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런 세월의 흐름속에 IMF를 만났지만 자식들을 어엿한 대학생으로 키웠다.

옛 어른들은 “부자 3대 없고 가난 3대 없다”는 말과 “평생 마당만 쓸란 법 있나”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상처가 되고 눈시울 적시게 한다. 그러나 이들 환경미화원들은 자신이 선택한 이 길을 누가 뭐라해도 묵묵히 맡은 직분을 수행하고 있다. 1년 365일 가운데 설날과 추석 외에는 쉬는 날이 없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자신들이 맡은 지역은 어김없이 말끔히 정리 한다.

2006년 병술해에 이들의 소망은 뭘까. 서민들의 주름잡힌 이마에 활짝 펴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2006년 병술년을 맞는 두 환경미화원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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