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동네한바퀴
KBS ‘동네한바퀴

 

광명지역신문>

2월 3일 KBS ‘동네 한 바퀴’ 제256화의 부제는 ‘새 물길이 되다 옛 포구동네 – 서울 도화동, 공덕동’이다.

서울 25개 구 중 한강 변에 가장 넓게 자리해 한강에서 바닷물이 들어오는 마지막 나루터였던 마포.

사람과 물자가 모여 번성한 통로였던 곳은 청운의 꿈을 안고 온 젊은이들에겐 첫 보금자리로, 퇴근길 값싸고 푸짐한 먹자골목을 찾는 직장인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참새 방앗간으로, 여전히 복닥거리는 삶의 무늬들을 이어냈다.

마포 하면 디지털 시대를 이끌어가는 상암동, 흔히 젊음의 거리라 불리는 서교동, 합정동 등을 떠올릴 수 있지만 길게 이어진 한강 길을 따라 마포 동부권으로 오면 아직 사라지지 않은 옛이야기의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 256번째 <동네 한 바퀴>에서는  마포대교를 건너 공덕오거리를 중심으로 마포의 오랜 동네들을 찬찬히 걸어본다.

 

▶ 나루터의 흔적을 거닐며, 마포대교

 

마포와 영등포를 잇는 마포대교를 걷다 돛배 모형을 발견한다. 사방에 높은 빌딩과 아파트들, 숨 가쁘도록 쉼 없이 이어지는 대교 위 차량들 가운데 뜬금없는 돛배라? 알고 보니 이곳이 바로 마포나루터였다는데. 

용산, 마포, 서강의 세 포구를 지칭했다는 그 이름, ‘마포’답게 마포나루터는 바닷길을 따라 한양으로 들어 온 배가 정착하는 조운의 종착점. 삼남 지방의 곡식과 새우젓 등 온갖 귀한 물건이 이곳에 다 모였단다. 

아주 까마득한 시절 같지만, 한강에 배가 오가던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는 여든에 가까운 옛 마포 토박이들을 만나 들은 한강의 추억은 새롭고도 놀랍다. 배를 타고 등하교하며 한강 속 섬, 밤섬 백사장에서 해수욕하고 놀았던 그들에게 마포는 어떤 곳이었을까.

역사가 깊어 사연도 많은 동네, 마포 한 바퀴는 마포대교에서 시작해본다.

 

▶ 마포 굴다리의 추억을 잇는 세 자매의 청춘 예찬

 

용산구와 인접한 동부 끄트머리에 있어 마포의 관문이라 불리는 도화동. 복사꽃이 많았던 동네라 곳곳마다 복숭아 동상, 간판들이 보인다. 

그 간판 아래, 복숭아처럼 뽀얀 젊은이가 가게 앞 숯불과 씨름 중! 고된 아르바이트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나이 서른에 10년 차 고깃집 사장이란다. 마포가 화려한 ‘미래도시’가 되기 전, 이 근방엔 마포 공사장 노동자들에게 인기가 많던 일명 굴다리 골목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부모님이 그곳에서 갈매기살을 파셨다고. 그곳은 재개발로 이제 사라졌지만, 자신은 명맥을 잇고 싶어 꽃다운 20살에 사장 자리를 꿰찼다는 그녀. 당당함의 원천이 어디 있나 싶었더니 가게 안엔 꼭 닮은 동생이 둘. 세 자매가 청춘을 불살라 연중무휴, 이 식당에 올인했단다. 

외국인 손님들을 응대할 수 있는 유창한 언어능력, 그림을 그리고 회사에 다니며 장사와는 전혀 다른 전공을 가졌던 세 자매가 고깃집에 모인 덴 분명 사연이 있을 터.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추억이 그들을 이 자리로 이끌었다는데. 그 기억을 이어나가기 위해 오늘도 ‘행복의 집’을 짓는 자매들의 유쾌 발랄한 하루를 엿본다.

 

▶ 골목길 가정집에서 만난 63년 장석 장인

 

대규모 재개발로 매년 천지개벽을 이뤄가는 서울. 그곳에서도 마포 일대는 과연 손꼽히는 발전을 이뤄가는 동네다. 또 몇 년 후엔 과연 얼마나 많은 골목이 사라지고, 새롭게 변할까. 

길을 걷다가 발견한 옛 골목 주택가, 좁고 낮은 계단을 올라 발견한 한 가정집에 ‘전통 장석 기능전승자의 집’이라는 작은 간판이 있다. 전통 장석이 이곳에? 문을 연 순간 세월의 더께 아래, 집의 한 공간처럼 자리를 지키는 장인을 만난다.

올해로 여든이 된 그의 손에서 만들어지는 장석은 경첩이나 금속 문양 손잡이, 자물쇠 등 가구의 멋과 용도를 마무리 짓는 작품 중 작품. 인사동 등 서울의 여러 지역을 떠돌다 인근 아현동 가구거리가 형성되던 때, 처음 마포로 온 그는 가구거리가 활력을 잃으면서 더 길고 오래, 장석을 만들기 위해 이 작은 집에 작업장을 차렸단다. 그 사이 장석 제작은 빠르게 기계화로 넘어갔고 고가구를 찾는 이들도 확연히 줄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이곳에서 장석만 만들기로 다짐했단다. 왜? 전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 

누가 뭐래도 내 인생은 장석뿐이라는 그에겐 든든한 후계자, 아들도 있다. 이 길이 맞을까, 고심할 만도 하지만 고민 없이 장석 외길만 걸을 생각이란다. 다 아버지의 굳센 믿음 덕분이다. 

언젠가 이 골목이 사라져도, 또 장석이 잊혀져도 부자는 수만 번 정과 망치를 두드릴 생각이다. 그래서인지 부자가 새기는 장석 무늬는 넝쿨 조각. 무한히 뻗어나가는 넝쿨 조각이 꼭 부자의 큰 뜻을 닮았다.

 

▶ 당인리 화력 발전소, 마포새빛문화숲이 되다

 

1950년대까지 서울 유일의 발전소였던 서울화력발전소. 흔히 당인리 발전소라 불리던 이곳은 한때 서울시 전력의 75%를 충당했던 산업화의 상징이었다.

시대가 흐르고 친환경 발전을 지향하게 되면서 화력발전소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현재 근대산업유산으로 원형 보존해 공원으로 재탄생되었다. 특히 당인리를 상징하는 60m 높이의 4‧5호기 굴뚝 두 개와 옛 당인리선이 지나던 철길은 공원의 주요 볼거리 중 하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탁 트인 한강 변 풍경이 답답한 속을 환히 열어준다.

 

▶ 250종의 전통주로 지켜내는 추억의 학사주점

 

오래된 가게가 살아남으려면 가진 노하우를 지켜내야 할까, 시대에 따라 변해야 할까. 아니면 양방향을 잘 혼합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가야 할까.

천정부지로 뛰어오르는 땅값에 몇 년 새 수많은 토착민들이 떠났다는 경의선 숲길 땡땡거리 근방. 근래 보기 드문 외관의 전통 주점이 창밖으로 수많은 전통주들을 자랑하고 있다. 오직 국내 양조장의 술만을 취급한다는 이곳의 주종은 무려 250가지라나? 

새롭고, 보기 드문 술들을 빠르게 들여 소개한다는 취지와 달리 내부는 지극히 예스러움 그 자체. 지어진 이래, 32년간 단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는 인테리어는 주인의 추억과도 맞닿아있다는데. 22살부터 손님으로 매일같이 드나들던 가게를 32살에 인수, 아내까지 만나 신접살림 차리듯 꾸려나간 이곳은 집보다 소중한 공간. 지켜내야 할 고향 같은 곳이었다. 하지만 8년 전, 단골이었던 이웃들이 모두 동네를 떠나며 부부에겐 살아남기 위한 변화가 필요했고 오직 이 공간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막걸리에 전, 두부김치가 기본이던 전통 주점을 250종의 술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도 있었지만, 부부가 원했던 건 이들의 손때가 묻은 장소를 오래도록, 그대로 지키는 일. 더불어 사랑이 꽃피는 가게의 전설을 이어가고 싶었다는데. 사실 이곳은 동생 내외, 손님들은 물론 가게 종업원만 해도 무려 5쌍의 커플을 결혼까지 성사시킨 ‘만남의 장소’라고? 과연 얼마나 많은 예비부부가 또 이곳에서 탄생할까. 사랑의 학사주점에서 주인 내외가 추천하는 특별한 전통주 한 잔을 기울여본다.

 

▶ 그 기억 속에 머무르다, 공덕동 족발 골목 모녀

 

수도권 최대 환승지로 불리는 마포 공덕오거리를 지난다. 공덕동은 여의도, 서대문, 종로 등 기업이 밀집된 지역의 중심지인데, 주위로 학교도 많아 마포에서도 단연 오가는 이들이 많은 곳. 자연스레 들어선 식당도 줄을 잇는다.

50여 년 전 이곳에 상권이 발달하지 않은 시점, 공덕동엔 회사원과 대학생에게 사랑받은 이른바 ‘가성비 회식 명소’가 있었다. 바로 공덕동 족발 골목. 족발을 시키면 떡볶이, 순댓국이 무한정 나오는 이곳은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으로 유명한데 골목길을 지나면 가게 앞에서 꼭 인사를 건네는 ‘족발 골목 마스코트’ 김정현 어머니도 계신단다. 

족발 골목이 형성되기도 전, 겨우 한두 집 알음알음 생길 때 이곳으로 들어왔다는 김정현 어머니는 함께 하던 남편을 떠나보낸 후 두 딸에게 가게를 물려준 지 어언 10년째. 하지만 여태 매일 아침이면 가방 하나 챙겨 꼬박 해가 질 때까지 가게 앞 의자에 앉아있다. 그 이유는 역시 수십 년 정든 골목을 떠날 수 없어서겠지만 사실 어머니의 밝은 미소 속엔 숨은 아픔이 있다는데. 저녁이면 문전성시, 북적이는 족발 골목. 그곳에서 차츰 기억을 잃어가는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곁을 더 지키고 싶어 가게를 접지 못한다는 두 딸의 애틋한 마음을 들여다본다.

 

▶ 마지막 변사의 도전, 노부부의 행복 세탁소

 

한적한 동네 길가, 흥에 겨워 어깨춤을 추는 남자를 만난다. 그의 전 직업은 변사. 남북 분단 전부터 전국을 오가며 민중의 소리가 되었다는 어르신은 여전히 녹슬지 않은 실력을 보여주는데. 변사라는 직업이 사라지며 서른이 훌쩍 넘은 나이, 처음 세상의 냉혹한 현실에 던져졌다는 여든넷의 어르신은 친구에게 속아 ‘쫄딱 망한’ 후 땡전 한 푼도 없이 남의 돈으로 열었다는 세탁소로 안내한다. 

세탁소는커녕 세탁기 한 대도 낯설던 그 시절, 오직 먹고 살겠다는 일념으로 열었던 그의 세탁소는 올해로 52년째. 5살 때부터 노래만 불러 기술도 없고 돈 벌 재간도 없었으니 시행착오도 얼마나 많았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먹먹해진다는 아내, 하지만 버텨낸 건 나이를 먹어도 멈추지 않는 남편의 끼! 아직도 얼굴만 보면 그리 웃음이 난단다. 암만 보여줄 장기가 다양한들 수십, 수백 번은 들었을 텐데, 그래도 또 즐거운 건 이런 게 결국 사랑인 걸까. 아직도 신혼 같은 알콩달콩한 노부부의 행복 세탁소에서 덩달아 마음의 얼룩을 지워내 본다.

사라진 마포나루 위로 새 역사가 쓰이듯 차곡차곡 시간을 쌓아 더 큰 물길이 되는 사람들의 동네, 서울 도화동, 공덕동 편은 2월 3일 토요일 오후 7시 10분 <동네 한 바퀴> [256화 새 물길이 되다 옛 포구동네 – 서울 도화동, 공덕동] 편에서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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