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강찬호 -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 대표

딸 나래가 이상증세를 보인 것은 2011년 당시 5살 때였다. 딸이 감기를 앓자 가습기를 설치하고, 집 근처 마트에서 가습기살균제를 구입해 사용한 것이 문제의 원인이었다. 감기가 떨어지지 않고, 기침이 심해지더니 숨이 가빠졌다.

나래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졌고, 의료진은 10명 중 6~7명이 같은 증상으로 사망하고 있는데 원인도 알 수 없고, 치료법도 없다고 했다. 폐가 딱딱하게 굳는 폐섬유화 증상으로 항암치료까지 받으며 지옥같은 한 달,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긴 나래는 다행히 목숨을 건졌지만 여전히 천식과 감기, 비염으로 고통받고 있다.

질병관리본부는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가 폐 손상을 일으켰다고 발표했고, 나래는 2014년 가습기살균제 피해 4단계 중 1단계(인과관계 거의 확실) 판정을 받았다. 아이를 위해 사용한 가습기살균제가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딸에게 평생 짊어지게 했다는 죄책감에 아빠는 심장이 조여온다.

나래 아빠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모임’(이하 가피모)의 강찬호 대표(47)다. 광명시민신문 발행인이자, 광명에서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한 지역활동가인 그는 왜 이토록 힘든 싸움에 뛰어들었고, 무엇이 지난 5년간 그를 버티게 했을까.

 						 							▲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 런던 항의방문단에 참여한 강찬호 대표의 딸 나래(10살)
▲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 런던 항의방문단에 참여한 강찬호 대표의 딸 나래(10살)

“아이에게 미안했고, 내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가족들은 눈물 흘리는 것 밖에 할 수 없을 것 같았죠. 제품은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었고, 우리같은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을 막으려면 이런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모임을 만들게 됐어요.”

그러나 벽은 높았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렸지만 정부는 기업과 소비자의 분쟁으로 치부했다. 가해 기업들을 고발해도 검찰은 꿈쩍도 안했다. 정부와 검찰의 비호 아래 사람을 죽인 기업들은 피해자들을 아예 모른 척하고 사과 한마디하지 않았다.

속절없이 시간이 흐르면서 지금까지 공식 집계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는 1500여명이고, 사망자는 239명에 달한다. 잠재적 피해자까지 추산한다면 그 피해는 실로 엄청나다.

그는 가습기살균제는 ‘안방에서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라고 말한다. 정부가 기업들의 돈벌이를 방관하는 사이에 피해는 커졌고, 수사가 지연되면서 많은 것이 은폐됐다고 비판한다.

“저를 걱정하는 지인들은 왜 그렇게 힘든 싸움을 하냐고. 계란으로 바위치기하는 것이라며 포기하라고 했고, 저 역시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그런데 포기해버리면 아이에게 너무 미안하잖아요.”

가피모는 환경보건시민센터와 함께 5년 동안 모든 수단을 동원해 싸웠다. 기자회견, 항의 집회, 1인 시위를 하고 기업과 정부를 상대로 수차례 민형사 소송을 걸었다. 옥시 본사가 있는 영국 런던까지 찾아가 항의했다. 피해자 찾기 전국순회 캠페인과 자전거-보도 순례까지 지루한 싸움을 이어갔다.

올해 초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리면서부터 상황은 반전됐다. 수사가 본격화되자, 옥시는 부랴부랴 사과하는 상황이 됐고, 수사과정에서 옥시가 책임을 회피하려고 소비자들의 부작용 민원을 삭제하고, 유해성 연구결과를 조작, 은폐하거나 연구자를 매수한 정황 등이 밝혀졌다. 사람들을 분노했고, 불매운동을 확산되고 있다.

가피모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특별법 추진 ▲청문회와 국정조사 실시 ▲국무총리실 산하 대책본부 설치 ▲가해기업의 대국민사과 등을 요구하며, 지난 16일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도움으로 국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 판매업체, 원료물질 공급업체 등을 상대로 공동소송에 돌입했다. 이번 소송의 청구금액은 사망피해자 최대 5천만원, 폐손상 등 질병피해자 3천만원 등 총 112억원에 달한다.

그는 딸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했다.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척박한 환경에서 희망을 놓지 않는 건 나래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는 계란으로 바위를 뚫은 강하고 아름다운 아빠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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