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기획] '그럴 줄 알았어'에서 '어쭈 요것봐라'까지

                                                                                   ▲ 광명지역신문 9호 (2004.03.29)
▲ 광명지역신문 9호 (2004.03.29)
당초 시발역으로 계획돼 4,068억원이라는 대규모 혈세를 투입한 고속철 광명역은 2004년 4월 개통과 동시에 간이역으로 전락했다. 국토해양부(당시 건설교통부)와 철도공사는 광명시와 단 한마디 논의도 없었다. 고속철 광명역의 간이역 전락은 중앙정부가 지역을 얼마나 무시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이며, 부실하게 진행되며 막대한 혈세를 낭비하고 있는 대규모 국책사업의 허상을 신랄하게 드러내는 일이었다.광명시민들은 분노했고, 원칙과 명분있는 국책사업의 추진을 요구했다. 우리의 치열하고 힘겨운 싸움은 이렇게 시작됐다.

▶광명에서 떠든다고 달라질까?

이 싸움이 초기에 어려웠던 이유는 외부의 문제보다 내부의 원인이 컸다. 지역정치인들은 선거에서 자신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받을 것이 두려워 주민들이 이 사실을 모르고 그냥 넘어가길 원했고, 지역사회 오피니언 리더들이라 불리던 이들은 중앙정부에 맞서 싸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며 의지조차 없었다.

“거봐. 그럴 줄 알았어! 중앙에서 하는 일인데 광명에서 떠든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이유없이 매를 맞아도 항의 한번 못하는 광명의 현실이 싫었다. 광명시민은 무시 당해도 괜찮다는 근거없는 패배감으로 무기력해진 지역에서 신문을 만든다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다.
광명은 “이럴 줄 알았어”라고 포기하며 조용히 넘기지 말고, “어쭈 요것봐라”라며 문제제기를 제기하는 시민정신이 필요했다. 광명지역신문이 고속철 광명역 범시민대책위(이하 범대위)를 주도적으로 결성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고속철 범대위 어떻게 만들어졌나?

광명지역신문 홍석우 발행인은 지역인사들을 만나 중앙정부와 맞서 싸우자고 설득했고, 이런 과정을 거쳐 2004년 3월 범대위가 출범했다. 당시 범대위 소속단체는 광명상공회의소, 대한노인회 광명시지회, 바르게살기운동 광명시협의회, 새마을운동 광명시지회, 광명청년회의소, 광명문화원, 광명시해병대전우회, 광명시 특전동지회, 광명시수퍼마켓협동조합, 광명시택시노동조합, 개인택지조합이었고, 공동대표는 광명지역신문의 고문인 백남춘 광명상공회의소 회장과 박기범 당시 노인회장이 맡았고, 조미수 당시 시의원은 삭발시위까지 했다. 지금 범대위는 시 산하 조직처럼 전락했지만 시작은 민간의 자발적인 순수한 모임이었고, 광명역 정상화를 위한 100만명 서명을 전개하며 광명역 지킴이로서 큰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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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지역신문 13호 (2004.12.08)
▶쉬쉬하는 정치인들, 우리 편 맞아?

주민들은 이렇게 분노했지만 정작 지역정치인들은 고속철 문제로 시끄러운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당시 백재현 시장, 문해석 시의장, 전재희 국회의원, 이원영 국회의원은 광명시 모 음식점에서 모여 광명역 문제를 시끄럽지 않게 해결하자고 합의하기도 했다. 시끄러워봐야 표만 떨어진다는 계산에서다.

광명지역신문은 “시장-국회의원 뭐해요”라는 제하의 기사로 지역 정치인들이 광명역 문제를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미온적으로 대처하는 것을 비판했고, “광명역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지역정치인들이 한 일은 뭐냐”는 비난 여론은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만 해도 지역현안으로 지역 정치인들을이 비판을 받는 것은 광명에서 그리 흔치 않은 상황이었다. 광명시민들은 지역에 관심이 없어 그냥 넘어갈 것이라는 정치인들의 안이한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민들은 분노했고, 정치인들은 당황했다.

▶80만서명 지원한 백재현

비판여론이 거세지자, 가장 먼저 4자간 합의를 깨고, 움직임을 보인 것은 백재현 당시 시장이었다. 백 시장은 범대위가 추진하는 고속철 광명역 정상화와 영등포역 정차 반대를 위한 서명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고, 2004년 12월 광명, 안양, 안산, 의왕, 군포, 시흥, 과천 등 7개 지자체가 80만 서명을 받았다.

광명지역신문이 2005년 4월 주최한 ‘국회의원 간담회- 고속철 광명역 이대로 좋은가’는 주민들과 정치인들이 한목소리로 광명역 정상화를 위한 목소리를 내게 한 전환점이 됐다.

▶철도공사 사장 망언 일파만파

광명역 문제를 다루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철 철도공사 사장의 광명역 폐쇄발언이다. 2005년 9월 이철 사장은 “광명역이 4천억 넘게 투입돼 만들어졌지만 이용객이 없어 연간 운영적자가 420억원에 달해 연계수송체계를 마련할 때까지 광명역을 축소 또는 폐쇄하겠다”고 발언하면서 영등포 정차논란에 힘을 실으면서, 철도공사의 적자를 광명에서 부담하라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했다.

이철 사장의 발언배경에 대해 항간에는 영등포 상권을 좌지우지하는 모 재벌그룹과 모종의 합의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고, 철도공사의 적자와 공사 전환 이후 정부 지원이 끊긴 것에 대한 노골적 불만 표현이라는 평가도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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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11.18 (광명지역신문 27호)
▶영등포 논란 잠재운 전재희

당시 영등포 정차 논란을 잠재운 것은 전재희 국회의원이었다. 전재희 의원은 부천의 김문수, 안양의 심재철 의원 등 경기 서남부 7개시 국회의원 기자회견을 열어 이철 사장의 퇴진을 요구했고, 추병직 당시 건설교통부 장관과 국회 간담회를 주도적으로 개최해 영등포 정차논란을 백지화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 지역의 입지를 더욱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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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지역신문 70호 (2007.12.10)
▶로컬거버넌스 범대위의 추락

광명지역신문이 주도적으로 나서 조직된 범대위는 시민, 지방정부, 민간단체가 힘을 모아 중앙정부와 맞서 싸운 ‘로컬거버넌스’로 높이 평가됐다. 중앙과 지방정부의 갈등이 유발될 여지가 많은 가운데 범대위는 모범사례로 많은 학자들의 연구논문으로 발표되기도 했다.

범대위는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했던 광명에서 시민들의 잠재력을 모으는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범대위는 초심을 유지하지 못했다. 범대위 영향력이 커질수록 정치인들과 몇몇 집단들은 범대위를 자신의 생색내기용으로 악용하려 했다.

2005년 백재현 시장은 범대위 설치 및 지원조례를 만들어 예산 지원을 빌미로 범대위를 자신의 조직으로 활용하려 했다. 당시 범대위 집행부는 인건비 수준 밖에 안되는 푼돈 욕심에 광명시 예산을 지원받게 됐고, 범대위는 자발적 시민조직이 아니라 시 산하 단체로 전락했다. 광명지역신문은 이를 반대하면서 범대위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전락한 범대위에 제동을 건 것은 백 시장 이후 부임한 이효선 시장이었다. ‘하는 일없으니 예산을 지원할 수 없다’는 이 시장과 ‘돈을 계속 달라’는 범대위 집행부간의 신경전이 벌어졌다.

광명지역신문은 범대위가 초심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이효선 시장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예산이 끊긴 범대위는 사무국장의 인건비를 누가 줄 것이냐를 가지고 범대위 집행부간 갈등을 빚다가 스스로 무너졌다.

▶영등포 정차발표에 뒷통수 맞은 광명
이렇게 사라진 범대위가 재결성된 것은 2010년 10월 국토부가 고속철을 영등포와 수원에 정차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국토부 발표가 나오기전까지 광명시나 국회의원들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있었다며 뒷통수를 맞았다고 변명했고, 범대위 관계자는 기자회견에서 광명시가 예산을 지원한다고 해서 범대위를 재결성하게 됐다고 언급하면서 지역 정치인들이 교묘하게 범대위를 바람막이로 악용한다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었다. 범대위는 지금까지도 시장 측근의 자리 만들기용으로 예산만 낭비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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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1.3 (광명지역신문 109호)
▶2013년 광명역, 우리가 할 일은?

2013년 현재 광명역 정차횟수는 주말 140회, 평일 115회로 65%의 정차율로 점차 늘어나는 추세이며, 시발열차도 주말 4회, 평일 2회 편성돼 있다. 1일 이용객은 평일 1만3천~2만명, 주말 2만4천명. 2004년 4월 개통 당시 정차횟수가 평일 50회였고, 1일 이용객이 4천명이었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늘어난 수치다.

현재 영등포역에 1일 4회 정차하는 고속철은 KTX 본선이 아닌 새마을호를 감축한 대신 일반노선으로 운행되고 있으나, 본선으로 가는 KTX가 영등포에 정차한다면 광명역은 또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국토부는 2016년경 수서역 개통 이후 종합대책을 내놓는다는 입장이지만 영등포의 지역정치인들과 시민단체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는 상황에서 광명시 역시 정치적으로 면피하려고 하기보다는 정면에 나서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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