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산장갑의 자존심 진주장갑 '조현정' 대표

24시간 풀가동되는 공장을 한시도 소홀히 할 수 없어 아예 공장 옆에서 살고 있다는 조현정 대표는 요즘엔 직접 거래처에 장갑을 납품한다. 거래처의 불편사항을 듣는 것도 중요한 일과다. 기계를 정비하고 공장을 관리한다. 청소부터 미싱까지 손이 안 가는 곳이 없다. 힘들어도 완벽하게 일을 처리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어깨와 등에 부황자국이 지워질 날이 없는 것은 당연지사. 제조업은 여성이 하기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1976년 회사 창립 이래 제조업계에서 한 우물을 판 보기 드문 여성 CEO다.

장갑을 생산하는 것이, 제조업을 하는 것이 사양사업이라 하지만 진주장갑의 매출은 오히려 작년보다 늘었다. 가리대 삼거리 인근 250여평 규모의 공장에는 80대의 기계가 24시간 쉴 틈 없이 돌아가고 이렇게 해서 생산되는 장갑은 하루에 면장갑 2만8천 켤레, 코팅장갑 1만 켤레다. 진주장갑의 성공비결은 조현정 대표의 근면 성실함과 100% 국내산 최고급 순면실만 사용하는 그의 고집스런 장인정신에 있다.

진주장갑은 100% 국산 원자재를 사용하는 유일한 장갑회사다. 한번쯤은 값싼 중국산 실을 쓰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그는 “실을 바꿀 바엔 아예 일을 그만두겠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진주장갑은 중국의 거센 황토바람을 밀어내고 국산장갑의 자존심을 지켜나가는 마지막 보루다. 진주장갑 조현정 대표(54), 그를 만나본다.

신뢰로 쌓은 장갑쟁이 30년

진주장갑의 거래처들이 값싼 중국산 제품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진주장갑만을 찾는 이유는 조현정 대표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진주장갑을 한번 써 본 사람은 다시 진주장갑을 찾을 수 밖에 없다. 만드는 공정부터 차별화되어 품질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장갑회사들이 제조원가를 낮추기 위해 선염사(미리 하얗게 염색된 실)로 장갑을 짠 후 바로 포장해 판매하지만 진주장갑은 최고급 순면실로 장갑을 짠 후 표백처리(삶는 과정)하고 고열로 건조시킨 후 포장한다.

표백과 열 건조 과정을 거치면서 탄력이 생기고 실에 묻어 있던 약품과 균이 살균된다. 그래서 위생적이고 틀어지지 않아 항상 새 것처럼 쓸 수 있다. 진주장갑의 표백기술은 창립 당시부터 유명하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노하우다.

진주장갑의 또 다른 차별점은 바로 오바로크 공정이다. 기계에서 접착제로 제품이 완성되는 다른 회사 장갑과는 달리 진주장갑은 손목 부분을 사람이 직접 오바로크한다. 그래서 올이 풀리지 않고 손목에 착 달라붙는 느낌 좋은 장갑이 완성된다. 제조원가는 높아져도 한결같은 방식으로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조현정 대표의 경영철학은 여기에서도 발휘된다.

소비자 직거래 통해 매출 향상

진주장갑의 매출이 향상된 가장 큰 원인은 직접 공장에 방문해 장갑을 대량으로 구매하는 지역업체들이 작년에 비해 3배 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광명에 장갑공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는 이들이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이다. 제조원가 상승으로 이익이 낮아지는 대신 거래처가 늘어나면서 매출은 증가됐다. 거래처에 배달하는 기존 방식에서 소비자 직거래를 통해 판로를 확대하면서 진주장갑은 성장하고 있다.

제조업자는 애국자‥수도권 규제철폐

조현정 대표는 국내 제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제조업자는 애국자라고 말한다. “규제가 많은데 혜택은 없기 때문에 제조업을 하는 기업인들은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지요. 말로만 혜택을 준다고 하는데 모두 재벌에게만 유리한 것 뿐이죠.” 수도권 규제에 묶여 공장을 증설하려면 광명을 떠나는 기업인들이 많은 것이 안타깝다.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기업인

조현정 대표는 광명상공회의소 상임위원, 철산중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카네기 4기 회장이다. 장애우를 돌보는 것부터 장학사업까지 남모르게 사랑을 실천해왔지만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해 늘 부족함을 느낀다. 최근에는 무형문화재 57호 이수자인 김정우 선생으로부터 사사받아 국악에 입문하여 노인정, 요양병원 등을 찾아가 위문공연하는 보람에 푹 빠져 있다.

조현정이 아름다운 이유

진주장갑 조현정 대표는 한결같다. 진주장갑에는 사장실 대신 직원들이 일하다 쉬는 자그마한 방이 있다. 공장에서 땀 흘리고, 직원들과 같이 장갑을 일일이 포장한다. 화려하게 치장하지 않아도, 회사에 사장실이 그럴 듯하게 마련되어 있지 않아도 조현정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저작권자 © 광명지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