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터민 ‘이성희’ 남한에서 3번째 겨울나기

                      ▲ 자유를 갈구하며 고향 땅       북한을 탈출해 2005년 겨울 남한 땅을 밟은 이성희씨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자. 광명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삶을 펼쳐 나가고       있다.
▲ 자유를 갈구하며 고향 땅 북한을 탈출해 2005년 겨울 남한 땅을 밟은 이성희씨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자. 광명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삶을 펼쳐 나가고 있다.
자유를 갈구하며 고향 땅 북한을 탈출해 2005년 겨울 남한 땅을 밟은 이성희 씨는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자, 광명시민으로서 당당하게 삶을 펼쳐나가고 있다.

이성희 씨는 새터민이다. 새터민이란 탈북하여 남한 내에 정착한 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새터민은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다시 고향땅을 밟을 수 없다.

새터민들은 대개 북한에서 물질적 빈곤을 이유로 남한을 찾지만, 이성희 씨의 경우는 약간 다르다. 그는 북한에서 비교적 여유있는 형편이어서 노동을 하지 않고도 한가로이 지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가 남한으로의 모험을 감행한 이유는 자유롭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에서 전해 들은 남한에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2005년 11월 남한에 입국하게 된다.

그러나 남한에서의 시작은 슬픔과 허무감이 지배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했지만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 지 막막했다. 이성희 씨는 정부의 지원금으로 하안동 임대아파트에 거처를 잡은 뒤 매일 새벽 버스정류장에 나가 구인정보지를 뒤졌다.

그러나 낯선 말투를 사용하는 그에게 쉽게 일자리를 제공하려는 고용주는 없었다. 전화 목소리만을 듣고도 사람들은 조선족과 같은 불법체류자인지 의심했다. 그는 단순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어려움이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동료들은 호기심을 보이며 친근하게 대해주었지만 이북에 남겨둔 가족 생각에 밥숟가락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이성희 씨는 그럴 때마다 더 열심히 일했다고 한다.

그가 남한에서 처음 받은 월급은 35만원이었다. 2인가족 기준 최저생계비인 73만4천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액수였다. 열심히 일한 대가가 터무니없이 적은 게 억울했다. 그 후 취직한 하안동의 뉴코아아울렛에서는 중병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돌봐야 하는 그의 휴직을 불허했다. 그는 해고됐다.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해 준 것은 기독교의 힘이 컸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3일 밤낮을 쉴새없이 걸으면서 등에 업혀 있는 죄없는 아기만이라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도록 하늘에 기도 했었다. 무사히 남한에 도착하여 2년째 광명시에서 정착한 지금 그에게 신앙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는 현재 서울 종로의 귀금속 회사의 정규직 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남한에서 세 번째 겨울을 맞으며 어느새 새로운 사회에 적응을 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년부터 경영학 공부를 위해 야간대학도 알아보는 중이다. 나라의 걸림돌이 되기는 싫다는 이성희 씨. 어느새 누구못지 않은 대한민국 국민이자 광명시민의 한사람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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