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삶이 광명의 역사...시민의 기억을 활용해 기록 남겨야

민성혜 광명지역신문 편집위원 / 광명문화원 광명역사문화연구소장
민성혜 광명지역신문 편집위원 / 광명문화원 광명역사문화연구소장

광명지역신문=민성혜 본지 편집위원ㆍ광명문화원 광명역사문화연구소장> 2021년 광명-안양 간 행정구역 경계를 조정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광명시의 새빛공원과 안양시의 새물공원 및 박달하수처리장 사이의 ‘불합리한 행정 경계로 건축행위, 불법 주정차 등 주민들에게 큰 불편을 끼쳤기 때문’에 행정구역 경계를 조정하고 있다는 내용이었고, 2022년 4월 광명시와 안양시는 십수년간 줄다리기 협상 끝에 시계 조정에 합의했다.

기존 행정 경계는 광명시와 안양시 사이를 구불구불 지나가고 있었다. 광명시민이 일상으로 활동하는 공간에 안양시 행정구역이 포함되어 있어서 불편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광명시에서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광명시는 안양천과 목감천을 경계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금천구, 경기도 시흥시와 안양시 사이의 행정구역을 나누고 있다. 하천과 같은 자연 지형을 타 지역과 경계로 정하는 것은 전통시대에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나, 현대사회는 도시화 과정에서 구불구불하던 하천을 직선화하는 경우가 많아서 새로 정비된 하천 경계에 따라 행정구역을 변경하기도 한다.

2022년 4월 변경된 광명-안양 행정구역경계. 파란색 동그라미가 옛 자경리 (자료제공=광명시청)
2022년 4월 변경된 광명-안양 행정구역경계. 파란색 동그라미가 옛 자경리 (자료제공=광명시청)

1968년~1972년 개봉지구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광명사거리와 개봉동 일대가 주택단지로 될 때 목감천을 중심으로 광명시와 구로구 개봉동 사이의 관할 행정구역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현재에도 광명대교 건너편 롯데광명물류센터와 신구로유수지 일부는 구로구 쪽에 남아있는 광명시 철산동이고, 광명-금천 간 육교와 시흥대교 사이 하안동에는 금천구의 주공아파트단지와 초중등학교가 있다.

광명시와 안양시의 행정구역 경계는 철산동과 하안동의 사례처럼 안양천의 옛 물길에 따라 경계가 지어졌을 것이며, 양 지자체는 이를 기준으로 행정구역 경계 조정을 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구불구불하던 경계가 새로 정비된 도로를 기준으로 나뉘게 되니 시민들도 행정구역의 경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일상생활의 불편이 해소되었을 것이다.

광명시의 행정구역 변화와 타 지자체와의 관계는 광명문화원의 ‘광명학’에서 다루는 중요한 교육 소재이며, 광명시의 ‘지역전화번호 02’와 ‘광명 속의 서울, 서울 속의 광명’이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광명-안양 간 경계 조정은 강의로 포함될 사례로 적절하여 지도를 확인하다 보니, 안양천 옛 물길이 자경리 마을 앞을 휘돌아 빠져나가고 있는 형태다.

해마다 물이 끼어서(홍수가 나서) 곡식을 못 먹고

다 자란 곡식도 채소도 없어지고

그래서 생계가 상당히 어려웠어요

옛 자경리 앞은 안양천 변이었다. 하천부지와 가까웠던 자경리는 해마다 홍수를 겪어야 했고, 애써 가꾼 농작물까지도 물난리에 떠내려가니 가재도구를 겨우 챙겨서 성채산으로 피신하곤 하였다. 그래서 안양천의 물길을 바꾸는 사업을 추진하였고, 안양천 물길 바꾼 이야기는 2016년 광명문화원에서 발간한 『광명사람들의 삶과 놀이, 문화』라는 도서에 자경리 주민의 구술인터뷰로 담겨있다.

자경리 주민의 인터뷰에 의하면 현재 박달하수처리장 자리는 일제강점기부터 가축의 종자를 보존하는 종축장이었다. 해방이 되고 경기도 종축장이 되었고, 1940년대 말~1950년대 초에 종축장을 경기도 광주로 옮기면서 안양시 와룡산 아래로 물길을 돌릴 땅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대규모 토목사업은 경기도의 허가를 얻어 토지공사에서 진행했다고 한다.

2022년 4월 15일 시행된 「경기도 안양시와 광명시의 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규정」에 따라 지자체 간 행정구역 경계 조정은 마무리되었다. 안양천 물길 돌리기 사업과 관련한 기록을 광명시에서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시 광명시는 경기도 시흥군 서면이었으니, 관련 기록은 경기도청의 경기도기록관에 있을지도 모른다. 한편 당시는 공공기록물이 엄격히 관리되지 못하던 시대였으니 찾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행정기록물에 담긴 정보는 짤막한 사실관계로만 작성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경리 주민의 인터뷰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2016년 인터뷰에는 안양천의 물길을 돌리게 되기까지 자경리 마을이 처한 열악한 자연환경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기 위한 자경리 청년들의 활동, 광명 토박이로서 알 수 있는 지역 정보, 광명시의 개청과 시명 결정 등 광명 역사의 일부분으로 기록될만한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지차체 사이의 행정구역 경계조정은 행정절차에 따라 처리되었지만, 과거를 기억하고 있는 주민의 이야기를 통해 공문서에 담기지 않은 다채로운 이야기가 더해졌다.

지방자치시대가 열린지 30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지자체의 역사, 시민의 역사가 기록되는 일은 여전히 많은 설득과 예산이 필요하다. 더하여 광명시는 전통시대 광명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남아있는 자연마을 뿐 아니라 1960년대 이후 광명으로 이주하여 한평생을 살아낸 광명사거리를 중심으로 한 원도심까지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집을 짓느라 잠시 떠나있는 동안 그들의 삶과 함께 했던 생활용품(근현대생활문화자료)과 세월이 담긴 사진 앨범 등 광명의 역사가 될 시민의 이야기도 흩어져 사라지고 있다. 소중한 광명의 역사문화자산이 한번에 사라지게 될 위기에 있다.

2022년 11월 광명시 통계 기준으로 광명시의 인구는 약 29만명이다. 광명의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하는 1963년 11,325명에 비하면 약 25배의 인구 증가를 이루었다. 약 60년 동안 광명시에서 태어나 광명시를 고향으로 기억하게 될 광명시민의 수도 도시화 초기보다 큰 비율로 증가했을 것이다.

광명역사 연구를 기반으로 한 광명학 교육은 젊은 광명시민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과 나의 부모가 광명에 정착하고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소통의 통로가 될 것이다.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 어떤 곳인지 전해줄 수 없다. 우리는 후세에 물질적 풍요 뿐 아니라 가치있는 유산도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 재개발로 사라지고 있는 현재의 모습을 더 늦기 전에 시민인터뷰나 사진, 영상으로, 다양한 시각과 다양한 매체로 기록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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