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소녀인냥 예쁜 시화로 장식된 책갈피를 모으고, 연예인 얼굴 표지보다는 시가 쓰여진 연습장을 고르며 시집을 무슨 의미인 줄 도 모르고 외우곤 하며 중학시절을 보낸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때 서정윤님의 ‘홀로서기’ 는 멋지고 특별한 삶을 꿈꾸었을 내 마음의 현을 울렸고 ‘말로써 행동을 만들지 않고 행동으로 말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혼자가 되리라’,‘ 숱한 불면의 밤을 새우며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는 시행은 내 미성년이 끝날 때까지 진동을 멈추지 않고 내 입속에서 읊조림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러나 홀로서기는 성년이 되면서 낡은 화두로 물러났고 홀로서지 못한 밤은 불면으로 시행착오의 후유증을 톡톡히 치러 주곤 했었다.

그런데 ‘홀로’라는 단어와 맺은 인연이 법정 스님의 ‘홀로 사는 즐거움’으로 다시 생생하게 내 삶의 중심 언어로 이어졌다. 우뚝 서야 할 공자의 이립(而立)을 넘기며 세월의 이끼가 낀 ‘홀로’라는 내 사전속 체험 어휘를 되짚어볼 수 있었다.


스님은 보다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고자 하는 삶의 규범에 맞추어 여전히 산골 오두막에서 침묵과 무소유의 삶을 살고 계셨다.


독신 수행자가 아니더라도 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 밖에 없는 존재다. 이 세상에 올 때도 홀로 왔고 살 만큼 살다가 떠날 때도 홀로 간다. 삶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업이 다르기 때문이란다. ‘홀로있음’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홀로 사는 사람은 고독할 수는 있어도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단지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는 ‘고립’이 아닌 모든 것이 뿌리로부터 근본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전제에 대한 이해에서 고독을 바라보라는 뜻일 것이다.


서로 의지하되 얽매이지 않고 공존의 완성을 이루는 길은 모든 존재가 본래 전체적인 자기 홀로있음을 통하면 된다는 뜻이 아닐까? 모든 존재들이 완전히 홀로 될 때 절로절로 어울림이 이루어진다는 것일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나무가 자라면 자랄수록 보다 많은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는 것과 같은 자연스런 조화를 우리도 경험할 수 있지 않을까?

노민화 <광명동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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