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한심한 나라에서 떠나라?

“에이! 영등포에 서면 그게 무슨 고속철이야?” “그럼 광명역을 왜 만들어 놨어?”

대다수의 사람들이 화를 낸다. 그러나 정작 앞에 나서서 막겠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먹고 살기 힘들다는 얘기다. 나 역시 20년 넘게 광명 토박이로 살아왔지만 이런 핑계들로 고쳐 나가야 할 일들을 모른 척 넘어간 게 아닌지 생각해본다.

요즘 어딜 가나 하는 이야기는 고속철이 영등포에 들어설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반문한다. 고속철이 영등포에 서면 편해서 좋은데 그걸 왜 막냐고. 또 어떤 이들은 말한다. 나라에서 하는 일을 우리 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겠냐고. 그냥 될대로 되라고 지켜만 보고 뒤에서 욕만 해대면 그만이다.

몇몇 사람들의 말처럼 아마도 영등포에 고속철이 정차하면 광명시민들 절반 이상은 손쉽게 고속철을 타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외딴 섬처럼 동떨어져 있는 광명역보다 버스 한번이면 빠르고 편하게 영등포역을 찾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고속철 사업은 전국 반나절 생활권을 외치며 서울에 몰려 있는 교통과 인구분산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다시 말해 몇몇 시민들의 개인적 이익이나 건설교통부와 철도청이 자신들의 수익성을 내세워 시시때때로 변경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11월 23일 고속철영등포역정차반대범시민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고속철 사업이 더 이상 예산낭비를 하며 국민을 기만하는 것을 앉아서 지켜볼 수 없다는 의지의 표명이며 10만 서명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다.

혹자는 이를 애써 광명시민들의 지역이기주의나 지역대결구도로 매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등포 정차를 막고 광명역 활성화를 위한 연계교통망을 요구하는 것은 광명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균형발전을 위함이고 예산낭비를 막자는 취지다.

작년 말 김천 등 3개 중간역을 추가로 결정하면서 건설교통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역 국회의원의 총선용 선심성 공약을 위해 중간역 설치를 결정한 것이 선례가 돼 너도나도 고속철 역사를 세워달라고 졸라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대규모 국책사업이 이처럼 몇몇 지역의 이기심과 정치적 욕심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불행하게도 건설교통부와 철도청의 행태를 보면 고속철 사업에 어떠한 원칙도 없다. 상황에 따라 말을 바꾸고 예산을 마구 써댄다. 국민 앞에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저 관행이므로. 지금까지 다른 사업들도 그렇게 해왔으니 그게 이제 와서 무슨 문제냐는 식이다. 그렇다면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고 국책사업의 기본을 뒤흔든 책임을 누가 질 것인가. 이제 국민들이 나서서 그 책임을 철저히 물어야 한다. 이 다음에 우리 아이들에게 “이 한심한 나라에서 살지 말고 그냥 떠나라”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김남현<광명시슈퍼마켓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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