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로 주부를 대상으로 하는 어떤 강의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석을 체크하는 연속 강좌였기 때문에 출석부가 있길래 강의를 하기 전에 사람과 이름을 일치시켜서 눈맞춤이나 한 번 해보려고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런데 분명히 출석부에는 온 것으로 되어 있는데 몇 번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출석 체크만 하고 그냥 갔나보다 생각하고 다른 사람으로 넘어가려는데 모기만한 소리로 “저기, 저 XXX 왔는데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름 부르는 소리를 못들었냐고 물었더니 하도 오랜만에 자기 이름을 들어봐서 자기가 아닌 줄 알았단다. 모두들 한 두 번은 경험했다는 듯 공감하는 웃음으로 넘어갔지만 단순히 웃을 일만은 아니었다.

많은 여성들, 특히 결혼 이후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여성들에게 자신의 이름은 굉장히 낯선 것이 되어간다. 누구 아내와 누구 엄마, 누구 며느리의 삶이 거의 유일한 생활이 되기 때문이다. 통장을 개설해도 남편이 개설하고 관리만 여성이 하는 경우도 많고, 핸드폰도 남편이 자기 명의로 해서 개통시켜준 후 아내에게 주는 경우도 많다. 더욱이 아이들 교육 성적 - 엄밀히 말하면 대학 입학 성적 - 에 따라 여성의 성적이 결정되는 현실은 여성을 ‘누구 엄마’로 사는 삶에 모든 것을 걸게 한다.

그런데 ‘이름’이라는 것은 한 개인을 사회적으로 그 실체를 드러내게 하는 도구이며, 개인과 사회를 연결시키는 고리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의 이름이 없어지거나 무용지물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실체가 온전히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아직도 누구 아내나 누구 엄마의 삶이 중심을 이루고 있고 누구 엄마의 삶은 더욱 강화되고 있어서 누구 엄마의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하는 다른 여성들은 일종의 자괴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여성이 자신의 고유한 이름으로 ‘자기답게’ 살지 못하고 ‘누구의 무엇’으로 살아야 할까. ‘삼종지도(三從之道)’를 거론하면 지금이 어느 때인데 아직도 그러냐고 반문하지만, 실제 여성의 삶을 들여다보면 형태나 강도만 달라졌을 뿐 여전히, 아직도 삼종지도의 삶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여성이 변형된 삼종지도의 삶을 살 수는 없고, 또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이름을 찾아가고 있다.

경제활동을 통해서든, 지역사회 봉사활동을 통해서든, 종교활동을 통해서든, 평생학습이나 취미활동을 통해서든 여성이 독자적인 자기 삶의 영역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여성들이여 더 이상 자신의 이름을 썩히지 말고 당당히 꺼내자. 자기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해주자. 그리고 그 이름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많이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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