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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송진우의 암살 배후는? 모스크바 3상회담 관련 신탁통치 보도 논란
  • 이서진 기자
  • 승인 2020.02.11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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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KBS

[광명지역신문=이서진 기자] KBS ‘역사저널 그날’ 254회는 ‘모스크바 쇼크, 한국을 충격에 빠뜨리다’편으로 당시 상황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 한국을 분노에 빠뜨린 충격적인 소식

해방 원년의 마지막 날인 1945년 12월 31일, 약 30만 명의 대규모 시위대가 서울 시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미국, 영국, 소련 3국 외무장관 회담에서 결정된 ‘한국 신탁통치’안 때문. 즉시 독립 대신 강대국들의 신탁통치가 필요하다는 모스크바 회담 결정에 전국은 대대적인 반탁운동 열기에 휩싸인다. 

■ 민족 분열의 서막, 그리고 송진우

임시정부 진영이 중심이 되어 격렬하게 펼쳐진 반탁 운동. 그 와중에 당시 한국민주당의 수석총무 송진우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 발언 이틀 뒤, 송진우는 괴한들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송진우는 무슨 발언을 했고, 암살 배후는 누구일까?

■ 좌우 대립의 격화

1945년 모스크바 3상회담 관련 12월 27일의 보도는 오보였다? 모스크바 회담 결정서 내용을 자세히 확인한 좌익 진영은 임시 정부 수립이 신탁통치보다 더 중요한 내용이라며 찬탁의 노선으로 선회한다. 이후 좌우 진영은 모스크바 3상회담 지지 여부로 나누어져 대립이 격화된다. 신탁통치 관련 보도의 진실 여부에 대해 알아본다.

■ 찬·반탁 논란 속, 수혜자는 누구?

신탁통치 논란에 따른 혼란을 틈타 기회를 잡은 세력들은 따로 있었다. 찬 ·반탁 대립 속에서 이득을 본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 현재 우리에게 주는 반탁운동의 의미는

좌우 진영이 모스크바 3상회담 지지 여부로 나누어져 격렬한 대립이 이어지던 와중에  분열의 파국을 막고자 노력하던 움직임도 있었다. 그 노력 끝에 합의된 4당 코뮤니케의 내용과 성패 여부에 대해 알아본다. 

모스크바 3상회담 결정서에 대한 1945년 12월 27일 보도에서 촉발된 신탁통치 논란이 우리 역사에 남긴 파장과 의미는 무엇인가? 2월 11일 화요일 밤 10시 KBS 1TV <역사저널 그날> “모스크바 쇼크, 한국을 충격에 빠뜨리다”에서 살펴본다. 

이서진 기자  webmaster@joyg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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