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진호 - 용산전자랜드 평강디지털프라자 대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죠!”
사람 좋아하는 서글서글한 성격에 누구와 만나도 잘 어울리는 그는 가난을 딛고 전자유통업계에서 최고의 매출을 올리는 마이더스의 손이 된 그는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언제나 손을 내민다. 광명토박이이자, 광명에서 세 아이를 낳아 키우는 아버지, 자수성가한 능력있는 사업가, 평진호 용산전자랜드 평강디지털 프라자 대표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구다. 최고라 멋지고, 가슴 따뜻해 아름다운 그를 만나본다.

                                                                                   ▲ 평진호 용산전자랜드 평강디지털프라자 대표
▲ 평진호 용산전자랜드 평강디지털프라자 대표
그는 노온사동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적어도 다섯 살 되던 해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그랬다. 밤일마을 토박이로 광명의 최초 목장인 ‘운산목장’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하신 후 가세는 기울었고, 그가 군대에서 제대했을 때는 집안이 빚더미에 앉아 있었다.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큰아버지가 경영하는 삼성전자 대리점의 1톤 트럭 운전기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고, 영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잘 생기고, 좋은 인상에 몸에 밴 친절함을 고객들은 좋아했고, 영업을 시작한지 1년 반만에 매장 책임자로 승진했다. 이후 1988년 그는 용산에 ‘평강프라자’를 차렸다. ‘평강’은 부모님의 성을 딴 상호다. 부모님의 이름을 걸고 부끄럽지 않게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어머니가 태몽으로 백룡이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셨대요. 어머니 태몽 덕에 잘 살고 있나 봅니다.” (웃음) 그는 어머니가 대출받아 주신 500만원을 종자돈으로 사업을 시작해 전자제품 유통업계에서 손꼽히는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젊은 시절 고생을 하면서 얻은 것이 있다면 어떻게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는 거죠.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운 청소년들의 성장에 밑거름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저에게는 축복이 아닐까요?”

이런 생각에 그는 2009년 광명종합사회복지관과 연계해 평강장학회를 설립했고,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추천받아 4년째 분기별로 장학금을 지원한다. “가정 형편 때문에 아이들이 기 죽지 말고 꿈을 이루기 위해 날개를 펼쳤으면 하는 바람이죠. 일회성 도움이 아니라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싶어요. 어린 시절 힘들었던 생각을 하면 어려운 사람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요!”

비록 사업은 서울에서 하지만 광명토박이인 그는 지역에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부모님의 고향이고, 자신의 고향이고, 세 아이들의 고향인 광명에 대한 책임감은 누구보다 크다. 광명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광명에서 자라고, 교육받고, 일할 수 있는 살기 좋은 고향을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광명은 잠시 살다가 떠날 도시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살아갈 도시이고, 내 자식이 살아야 할 도시다.

그는 지역의 선배로서, 부모로서, 지역의 청소년들이 좀 더 밝게, 좀 더 행복하게 웃을 수 있기를 바라며 평강장학회가 지역사회의 기부문화를 더욱 확산시키는데 미력하나마 일조하고 싶다.

평강장학회에 뜻을 같이하는 평강디지털프라자의 전 직원들은 월급의 0.5%를 매달 장학회에 기부한다. 평진호 대표는 회사 직원들에게 기부운동의 동참을 제안했고, 직원들 역시 흔쾌히 뜻을 같이 했다. “전직원이 장학금으로 기부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내부적으로 결속도 되고 있죠!” 그는 개미군단의 작은 정성이 모여야 코끼리 군단이 생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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