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사평론가 김석수는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위원(전), 창조한국당 대변인을 지냈다.
▲ 시사평론가 김석수는 데일리서프라이즈 편집위원(전), 창조한국당 대변인을 지냈다.
안철수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1500억원에 달하는 재산을 기부하기로 선언한 뒤에는 다자간 구도에서도 대선후보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안철수 현상은 한나라당을 비롯한 여권이 아니라 야권에서 더욱 크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안철수 등장에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지지세에 거의 동요가 없다. 그만큼 박근혜 지지세는 강고하다는 뜻도 되고, 동시에 매우 경직되어 있다는 뜻도 된다. 경직성이 확장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은 상식이어서 한나라당은 그만큼 위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안철수 현상이 정치권 밖에 던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시민들에겐 어떤 의미를 갖는 ‘안철수 현상’일까? 알다시피 안철수는 구글이나 애플을 순환계가 살아있는 자연생태계로, 삼성을 비롯한 우리나라 대기업을 자생성없는 동물원에 비유했다. 대기업의 배타적 독점체제가 경제를 ‘삶’이 아니라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말이다. 또 그는 시장에서 낙오된 약자와 패배자를 위로했다. 한마디로 공정과 공평과 약자에 대한 위로와 이들을 진정으로 위로할 수 있는 정의체제의 확립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안철수 현상’을 한마디로 언급하자면, 그것은 바로 ‘구체제(앙시아 레짐)의 청산’이다. 새로움으로 낡은 것을 교체하자는 국민의 여망이다. 정치전문가가 아니라 서툴지만 시민이 새 정치의 주인이 되자는 신호다. 여기에 여야를 막론하고 기득권 세력들이 숨죽이며 안철수의 다음 행보를 의심어린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는 까닭이 있다.

나는 이 현상을 ‘국민의 직접민주적 요구의 대대적인 진출’이라고 부른다. 안철수 현상이 만든 ‘정당정치의 붕괴’는 바로 ‘기존’ 정당들에 대한 불신이 분노로 뒤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무소속 박원순 변호사가 서울시장이 되는 과정을 보면 이 점은 명백하다. 당장 내 자신이 나의 운명을 좌우할 수 없는 대의민주제에서, 이제는 내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직접민주주의로 가자는 요구와 바람이 박원순과 안철수라는, 기존정치인들보다는 보다 겸손한 인사들을 통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시민이 자신의 권력을 자신이 행사하기를 원하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대중과 시민의 요구다. 지난 시절 시민의 뜻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해온 세력들에 대해 이제는 시민들이 더 직접적인 권력행사를 하고자 한다. 중요한 것은 시민이다. 아무리 낡고 썩어문드러진 쓰레기들이 길거리에 방치되어 있다고 해도 그 악취를 제거하려는 사람이 없다면 냄새는 지속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구체제와 구세력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지역사회의 새로움은 결국 시민들의 행동사항이다. 시민이 나서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안철수 현상은, 프랑스 대혁명의 대상이 되었던 앙시앙 레짐(구체제 낡은 세력)에 대한 시민의 대대적인 저항이 21세기 한국땅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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