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만으로도 빛나는 근육병 정석씨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마음과 정신도 아플 것이라고 생각한다. 3년 전 내가 만난 그는 평범한 청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종종 오던 전화가 끊기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그를 잊어갔다. 오늘 그를 만나고 알았다. 그는 더 이상 남의 도움이 없으면 전화를 걸고 받을 수 없었다. 20년 째 근육병을 앓고 있는 허정석 씨. 진단을 받았을 때만 해도 “스무 살을 넘기기 힘들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현재 27세의 지체장애 1급 장애인이다. 더 작아져 버린 그를 보며 미안함과 어색함을 감추기 위해 실없는 농담을 던졌다. 그러자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거 티나” 하면서 금세 분위기를 반전시킨다.

                      ▲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손과       발이 되어 준 10년지기 친구 치영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근육병 환우 정석씨 @사진 윤한영
▲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손과 발이 되어 준 10년지기 친구 치영씨와 담소를 나누고 있는 근육병 환우 정석씨 @사진 윤한영
초등학교 1학년의 정석은 학교 가는 것이 힘들었다. 엄마는 몸이 약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그의 병명은 진행성근이영양증(근육병의 일종)이었다. 그 병이 무엇을 뜻하는지 어린 정석은 알지 못했다. 시간이 그 병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었다. 몸이 힘들어질 때마다 그는 어머니를 생각했다. 늘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말한다.

그에겐 또 다른 가족이 있다. 고2 때부터 2년간 정석 씨의 손과 발이 되어준 십년지기 이치영(28세, 광명 7동) 씨와 강지노(28세, 부천시) 씨다. 단지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소하고에서 정석 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통지를 받았다. 성적 때문이 아니었다. 결국 안산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정석 씨의 어머니 류영희(53세) 씨는 그 때 심정을 이렇게 토로한다.

“우리 아이는 몸만 조금 불편할 뿐 뇌는 이상이 없는데, 사람들의 편견 때문에 힘들었어요.”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몸이 급격히 나빠졌다. 어머니는 아들이 광명에 있는 학교에 다닐 수 있도록 백방으로 뛰기 시작했다. 한 선생님의 도움으로 광명고로 전학을 오게 되었지만, 휠체어에 탄 정석을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다. 처음엔 주번들이 돕기로 했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였다. 그때 치영과 지노가 자원해서 그를 돕기로 했다. 요즘은 자주 못 본다고 하지만, 정석 씨네 현관 비밀번호를 알 정도로 절친이다. 서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있었다.

현재 그를 돕고 있는 활동보조인 유명숙 씨(47세)는 “몸이 많이 힘들 텐데 투정 한 번 부리지 않아요. 생각이 건전하고 아는 것이 많아서 놀랐어요.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곤 해요”라고 말한다.

“사람들은 정석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냐고 말하지만, 정석이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리에게 힘이 돼요.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요” 류영희 씨와 이치영 씨의 동일한 바람이다.

정석 씨는 “따뜻한 봄이 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식물원을 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요즘 식물 사진을 보며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고 있다. 그에겐 풀 한포기, 꽃 한 송이도 감사의 제목이다. 자신이 지금 덤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일까. 세상을 향한 원망도 욕심도 그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레는 있다. 우리는 때로 굴레의 아픔을 통해 인생을 배운다. 지금 그의 몸은 묶여 있지만, 그의 마음은 푸른 하늘을 훨훨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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