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재현 국회의원 - 다시 농성에 들어가며

                      ▲ 백재현     국회의원
▲ 백재현 국회의원
국회의사당 천정에는 모두 365개의 등이 있습니다. 1년을 하루같이 열심히 일하라는 뜻입니다. 딱딱한 바닥에 얇은 매트리스 한 장 깔고 누워 그 등을 올려다봅니다. “싸우지 말고 서민들이 편하게 살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손을 꼭 잡아주시던 지역 주민들의 얼굴을 하나둘 떠올리다가 얼마 전 스스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다시 국회의사당 점거농성에 들어갔습니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의사당문을 걸어 잠그고 옥쇄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헌정사상 초유의 여야 동시 점거가 시작된 것입니다. 국민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국가의 대소사를 결정해야 할 민의의 전당이 농성장으로 변한 시대의 비극이, ‘적과의 동거’라는 희극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 지금 국회의 현실입니다.

잠자리는 불편하고, 탁하고 건조한 공기로 목은 아파오지만 다시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쳐드리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이 앞섭니다.

6월 국회의 파행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전직 국가원수가 부당한 정치탄압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했던 국가적 비극을 온 국민이 애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이 그동안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서민경제를 외면해 온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 책임자 문책, 국정조사실시, 특별검사 도입, 검찰 개혁특위 구성 등 민주당의 요구사항은 국민들의 이같은 기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 달리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으로부터 되돌아온 것은 추모기간이 끝나기 무섭게 단독국회를 소집해 언론악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오만과 독선이었습니다. 단 한마디 사과도, 유감표명도 없었습니다. 진실은 또다시 묻혀지고 민주당과 국민들의 기대는 짓밟혔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49재가 끝나고 민주당은 최소한 대정부질의라도 할 수 있도록 정상적인 국회를 열자고 호소했지만 그마저도 외면당했습니다. ‘우리가 노 전대통령을 돌아가시게 했다’는 자책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돼서는 안된다’는 의지도, ‘더이상 민주주의를 후퇴시키서는 안된다’는 절박함도 국민들과 민주당의 몫일뿐,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게는 오직 언론악법을 통과시키려는 아집밖에 남은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원하는 언론악법은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온 민주주의 파괴의 결정판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여론은 우리 몸의 피와 같습니다. 우리 몸이 원활한 피의 흐름을 통해 영양분과 산소를 우리 몸 구석구석으로 보내야 살아갈 수 있듯이 민주주의는 여론의 원활한 흐름 없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언론은 피가 흐를 수 있도록 길을 내주는 핏줄입니다. 혈관이 심장으로부터 머리, 손발의 구석구석까지 피가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듯 언론이 우리 사회의 여론을 원활하게 흐를 수 있도록 해줄 때 민주주의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언론과 혈관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민주주의도, 우리 몸도 죽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은 재벌과 보수언론에게 공영방송과 뉴스를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핏줄을 재벌과 보수언론이 움켜쥐게 하려는 것입니다.

대다수 국민들이 언론의 독점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민주당은 재벌과 보수언론의 방송사 장악을 허용하지 않더라도 방송산업을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을 제시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인 박근혜의원 조차도 국민들의 우려를 수용해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재벌과 보수언론에게 방송사의 소유를 허용하는 내용만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방송산업의 선진화나 민주주의는 관심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재벌과 보수언론에게 줄 선물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언론의 독과점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입니다.

민주당의 이번 농성은 ‘재벌과 보수언론의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희생시킬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시작됐습니다. 언론의 민주화 없이는, 언론의 다양화 없이는 민주주의는 그 뿌리부터 썩어 갈 것입니다.

한나라당은 지금이라도 재벌과 보수언론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 민주주의의 미래를 더 먼저 걱정해야 합니다. 언론의 독과점을 우려하는 국민들의 여론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국회의 파국을 막는 길이자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길입니다.

한나라당이 오만과 독선을 버리고 국회가 정상화돼서 ‘서민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여야가 함께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2009.7.15 국회의원 백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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