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장이 독자에게] 노란물결에서 희망을 보다

많은 이들이 그를 대통령감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대학도 못 나온 그가, 모양새도 그럴듯하지 않은 그가, 어딘지 빈티 나 보이는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바꿔 보자는 열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재임시절 환영받지 못한 대통령이었습니다. 가장 큰 정치적 지지자인 386세대 역시 등을 돌렸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데 무슨 명분이고, 무슨 개혁이냐고 했습니다. 재벌, 언론 등 기득권 세력을 건드려 가진 자들이 돈을 풀지 않으니 살기 힘들다는 것이었지요. 하루하루 먹고 살기 빠듯한 서민들은 노통의 명분보다 당장 눈에 보이는 몇 푼이 중요했습니다. 노통의 명분에는 공감하지만 힘을 실어 줄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는 너무나 빨리 대한민국 대통령이 됐고, 너무나 앞서 갔습니다.

그가 퇴임하자 사람들은 그를 그리워했습니다. 봉하마을은 그를 보기 위해 찾아가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명분보다 눈 앞의 이익을 챙길 수 있다는 욕심으로 뽑아 놓은 MB는 1% 기득권, 보수언론을 위한 철옹벽을 만듭니다. 사람들은 ‘바보 노무현’이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MB가 살아온 과정을 보면 이런 상황을 아예 예상치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혹시나’ 했던 마음은 ‘역시나’가 됐습니다. 민생을 살리겠다며 정부가 푼 돈은 서민들의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자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갑니다. “돈 없는 것들은 재벌의 똥구멍이나 핥아서 떨어지는 똥고물이나 받아 먹는 것으로 만족하라”는 얘기인 셈이죠.

전임자가 만들어 놓은 대북정책, 언론개혁정책, 외교정책 등은 MB가 취임하자마자 바로 10년 전으로 후퇴합니다. 입바른 소리를 한 국민들은 툭하면 연행되고 압수수색 당합니다. 서울시청 광장은 봉쇄되고, 시민들이 차려 놓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분향소는 군홧발에 짓밟힙니다. 나라 안에서는 이렇게 강압적인 MB는 어쩐 일인지 나라 밖에서는 비굴모드를 취합니다. 부시의 운전기사 노릇을 하고, 일왕에게 90도 절을 합니다. 시대는 변하는데 MB는 여전히 그 흐름에 둔감합니다.

어쨌든 바보 노무현은 가고, 우리는 남았습니다. ‘노통이 어쩌면 자살할지도 몰라’. 검찰조사가 막바지를 향하던 어느날 새벽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스쳐 고개를 가로 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역시 가족과 측근들의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명분과 자존심을 목숨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성깔 더러웠던(?) 그의 마지막 선택은 그래서 어쩌면 가장 ‘노무현다운’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노무현이 전두환, 이명박과 다른 이유입니다.

바보 노무현을 추모하는 노란 물결에서 대한민국의 희망을 봅니다. 살아남은 자들은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가 바꾸려 했던 가치들이 무엇인가를.

‘아주 먼 훗날’ 역사가 그를 재평가할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그 시기가 ‘바로 지금’이 된 것이 한편으로는 서글픕니다만 어쩌겠습니까. 그 역시 살아남은 자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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