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윤 편집국장의 개성방문기 3

버스에 내려 북의 흙을 밟고 공기를 들이킵니다. 북측의 여성들은 상냥하고, 남성들은 조금은 무뚝뚝하고 융통성 없지만 속정이 물씬 풍깁니다. 제가 북측 사람들에게 관심이 많은 것처럼 이들도 남측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이 많습니다. 광명에서 지역신문을 하고 있다고 하자, 대뜸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이냐고 묻습니다. 그는 북에도 중앙지인 로동신문 외에 각 지역마다 하나씩 지역신문이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북측의 모든 언론은 국가에서 운영합니다. 짐작컨대, 비판, 견제 기능이 아니라 주민들에게 소식을 전달하고 사상을 교육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습니다.

성균관에서 1000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찍어대고 있는데 북측 안내원들이 몰려와 말을 겁니다. “이거 얼굴이 거기 나오는 겁네까? 내가 찍어줄테니 나무 쪽으로 가서 서세요.”
사진 찍히는 걸 죽기보다 싫어하는터라 뒷모습만 찍어달라고 합니다. 사진을 찍더니 말합니다. “거참, 뒷모습이 더 예쁜 건 첨 본다. 정말 이쁩네다.” 칭찬인지 욕인지, 어쨌든 이쁘다니 기분은 좋습네다!!

말로만 듣던 박연폭포, 정몽주의 기개가 어려 있는 숭양서원, 선죽교를 지나 고려박물관을 둘러보고 쇼핑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합니다. 사진은 찍어대지만 정작 찍고 싶은 것은 따로 있습니다. 그냥 평범한 북한 주민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버스를 보고 고사리손을 흔들어주는 코흘리개 어린아이들, 나름대로 한껏 멋을 부린 정장차림을 하고 자전거 타며 데이트하는 남녀,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

저는 박연폭포와 선죽교보다 개성백화점에 가고 싶었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개성주민들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문화센터 강좌 게시판에 어떤 강좌들이 개설되어 있는지 보고 싶어 관광객 대열에서 3~4미터 떨어졌다가 바로 현대 아산 직원들에게 제재 당합니다. 정해진 관광코스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형식적인 말을 다시 듣습니다.

맘씨 좋아 보이는 북측 관광지사에게 불만사항을 하소연해 봅니다.
“저는 고려박물관에 가는 것보다 개성백화점에 가고 싶어요”, “이렇게까지 통제할 필요가 있나요?”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 주민들에게 말도 못 걸어 본다는 게 말이 돼요?”
그는 말합니다. “그렇게 하면 좋겠지만 앞으로는 이마저도 어려워질 것 같아서 저도 정말 속이 상합네다.”

그 시간 북측은 개성공단 인원축소, 개성관광 등은 금지하되, 관광목적 이외의 교류는 한다던 당초의 방침을 바꿔 민간교류까지 전면 차단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합니다. 12월 4일 북한동포를 위해 10만장의 연탄나눔운동을 펼칠 예정이던 민주평통 광명시협의회는 현지에서 이 소식을 듣고 난색을 표시하며, 민간교류는 허용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역부족입니다. 북측은 공식적으로 방문을 취소하는 것이 좋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북한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전임대통령 시절의 남북 협의사항을 이행하지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북측이 민간단체의 방북을 취소, 제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입니다. 자칫 남북관계 전면차단의 가능성이 큽니다.

북측 안내원들은 남측 지도자가 북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는 한 경색된 남북관계는 좋아질 수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햇볕정책 계승으로 쌓아온 남북관계의 끈끈한 줄은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1년이 채 되지 않아 여지없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10년간 차근차근 만들어 온 민간통일전령사들의 운신 폭은 현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으로 대폭 줄어들게 됩니다.

사실 전임 대통령들의 햇볕정책에 대해 저는 찬성도 반대도 아니었습니다. 한편으로는 북이 어려우니 당연히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너무 심하게 퍼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민주평통 광명시협의회 이영희 수석부회장은 저를 만나면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북한을 갔다오면 왜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느낄 수 있게 돼.” 그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난 민간교류의 활성화는 남북의 길고 긴 얼음터널을 녹이는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고, 비단 물리적인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통일로 가는 길의 물꼬를 텄다고 말했습니다.

개성에서 몇 시간을 보낸 후 저는 일부 보수언론에서 무작정 퍼주기라 비난하던 전임 대통령들의 햇볕정책이 왜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었는지, 그것이 남북관계를 풀어 가는데 얼마나 많은 역할을 했는지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을 단 한번만이라도 방문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세대들이 받아온 반공교육은 더욱 철저했을 것이고, 북한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은 빨갱이로 오인돼 끌려가던 시절이 아니었는지요.

요즘 초등학생들의 통일에 관한 포스터에는 ‘무찌르자 공산당’ 대신 ‘우리 국민 축구사랑하는 마음으로 통일 이룩하자’, ‘이러다간 정말 아무 상관없는 남이 될지도 몰라요’, ‘오늘도 통일을 저금합니다’, ‘남북통일 로딩중’ 등 남북이 하나임을 표현하는 개성넘치는 표어들이 등장합니다. 그만큼 시대는 변했고, 통일은 이제 더 이상 멀리 있지 않습니다.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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