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윤 편집국장의 개성방문기 2

우여곡절 끝에 수속을 마치고 첫 번째 목적지인 박연폭포를 향해 버스가 이동합니다. 처음 들어오는 개성공단을 지나고, 개성 거리 한복판에 한국토지공사 이정표가 낯섭니다. 광활하게 펼쳐진 개성공단에 입주한 신원에벤에셀, 로만손 등 우리 기업들 간판이 눈에 띕니다.

피곤하다가 막상 북에 도착하니 욕심이 생깁니다. 어떻게든지 개성의 모든 모습들을 다 담아가고 싶었습니다. 이동 중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 하니, 눈에라도 담아가야 된다는 강박관념으로 잠을 못자 감기는 눈을 억지로 치켜 올리고 한 장면, 한 장면을 담아봅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북한’은 곧 ‘빨갱이’라는 정도는 아니었어도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의 사람들인 것처럼 배웠습니다. 매년 6.25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열리는 반공포스터 대회의 단골표어가 ‘무찌르자 공산당’이었으니 말입니다.

중학교 같은 반 친구가 남침과 북침이라는 단어가 헷갈려 6.25가 북침이라고 답했다가 늙은 도덕선생님에게 수십대의 따귀를 맞는 모습을 보며 몸서리를 쳤던 기억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 교육은 표면적으로 북한을 한민족 동포라 하면서도 북의 체제는 전혀 인정하지 않는 이중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무찔러야 한다던 북한은 너무나도 평온했습니다. 동네 어귀에 마을 주민들이 잡담을 나누고, 군인들이 한 명씩 초소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덩그러니 보초를 서고 있는 모습이 재미있었습니다. 저런 곳에서 왜 보초를 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자전거였습니다. 북에서 주민들은 주로 자전거로 이동합니다. 북측에서는 자전거도 면허가 있어야 운전할 수 있고, 앞에 번호판까지 달려 있습니다.

도심지에도 오고가는 사람이 적었고, 자동차는 거의 볼수 없었습니다. 마치 60~70년대를 연상케하는 헤어스타일과 옷 매무새, 군데군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찬양하는 새빨간 문구들과 승리를 기원하는 대형포스터들을 세워져 있습니다. ‘봉동 공산품 상점' 등 너무나 직설적이고 디자인 개념 없는 상점의 간판들은 옛날 영화 촬영세트장을 보는 것 같습니다. 땔감으로 나무들을 베어서인지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산은 듬성듬성 새로 심어놓은 전나무로 인해 어딘지 모르게 더욱 배고파 보입니다. 너무나 빨리 변해 온 남측과는 달리 북은 세월의 흐름에 편승하지 못한 것처럼 여겨집니다.

차창 밖 풍경들을 보고 있는데 북한의 관광지사 동무가 말합니다. “제가 설명하는 도중에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남과 북을 함께 지칭하는 것입네다”

뜻하지 않게 콧등이 시큰해집니다. 가슴에서 울컥 뭔가가 올라옵니다. 언젠가는 통일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남과 북을 ‘우리나라’라고 여긴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아니, 아예 그런 생각을 할 이유도,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북과 남이 우리나라’라고.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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