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재단의 기부문화가 만든 맨하탄의 힘

                                  ▲ Union Square에서... 필자의 뒷편에 노숙자가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 Union Square에서... 필자의 뒷편에 노숙자가 누워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 곳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9월 뉴욕에 잠시 다녀왔다.‘박원순(아름다운재단의 총괄이사)과 함께하는 미국 지역재단 둘러보기’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일주일 동안 뉴욕에 있는 지역재단 여섯 군데를 방문하고 온 것이다.

맨하탄 인근에 있는 퀸스지역에 숙소를 마련하고 뉴욕 지하철을 타고 다니며 지역재단들을 탐방하고 다녔다. 일주일 동안 뉴요커(NewYorker)처럼 출퇴근하면서 주로 발품을 팔며 지역재단을 찾아 다녔기 때문에 맨하탄 뒷골목을 누비고 다닐 행운도 함께 했다.
덕분에 2년 전 가족들과 함께 이곳을 관광했을 때에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에도 뉴요커들은 자동차 경적소리나 경찰관의 눈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횡단보도 신호등을 무시하고 차도를 건너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차가 없어도 신호를 기다리며 횡단보도 앞에 미련하게 서 있는 사람들은 관광객들 뿐이었다. 오히려 그런 착한 관광객들 때문에 앞길이 가로막힌 뉴요커들은 ‘Excuse me'를 연발하며 그들 사이를 빠져나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그래서 맨하탄으로 출퇴근한지 하루가 지나자마자 뉴요커 행세를 하기 위해 우리 일행도 덩달아 건널목 신호등을 무시하기 시작했다) 인도를 다닐 때도 뉴요커들의 발걸음이 관광객은 물론이고 그 바삐 산다는 서울 사람들의 발걸음보다 빨랐다. 출퇴근 시간이 아니어도 속도는 늦춰지지 않았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삐 사는 뉴요커들은 건널목 교통신호 위반에 대해 서로에게 관대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리라.

그들은 세상 어느 도시보다도 가장 치열한 경쟁의 거리에 내몰려 있어 보였다. 세상 누구보다도 빨라야 했고 생각의 속도는 때로 빛의 속도보다도 빨라야 했다. 그 결과 뉴요커들은 전 세계의 상당한 부를 거머쥘 수 있었을 것이다. 마천루 빌딩으로 화려하게 수 놓은 스카이라인이 이를 잘 웅변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뉴요커들의 빠른 발걸음은 성공한 뉴요커만을 양산한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운행된 지 100년이 넘는 뉴욕 지하철을 타고 맨하탄을 출퇴근하며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던 남루한 사람들, 맨하탄 마천루 빌딩 뒷켠에 대낮에도 누워 잠자는 노숙자들, 실패한 뉴요커들도 맨하탄 거리에 함께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실패한 뉴요커들 중 일부는 밤 만큼은 그들의 세상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듯했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경찰력을 자랑하는 축복의 땅 맨하탄의 거리가 밤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실제로 맨하탄의 뒷골목 밤거리를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는 것은 고사하고 말짱한 정신으로 혼자 다니는 것조차 무모한 일에 속한다.

맨하탄의 거리는 가장 큰 성공을 한 사람과 가장 큰 실패를 겪는 사람들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가장 안전한 낮과 가장 불안한 밤이 교차하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새로운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도대체 이토록 양극화된 이곳이 왜 이리도 활력이 넘쳐 보이는가? 밤이 무서운 도시가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발전하여 왔으며 적어도 앞으로 한 세기 내에는 발전을 멈추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가?

다행히도 그 의문에 대한 실마리는 미국 지역재단 탐방을 통해서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지역재단(community foundation)이란 지역사회 주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기금을 모체로 설립된 재단을 말한다.

맨하탄에 있는 North Star Fund, New York Community Trust, Robin Hood Foundation 등 유서 깊은 뉴욕의 지역재단을 방문해 재단을 책임지고 있는 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면서 과연 뉴욕이라는 지역의 지속적 성장의 밑거름이 무엇인가를 알게 된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개인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빠른 걸음으로 앞으로만 달려가던 수많은 뉴요커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바탕으로 가진 것의 일부를 흔쾌히 기부했다.

그리고 지역문제를 기꺼이 몸으로 감당하는 자원봉사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단체가 수없이 많았고, 뿐만 아니라 그들 단체를 기금조성을 통해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지역재단, 그 기금단체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전문가 집단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요커들의 빠른 발걸음은 자기로만 향해 있지 않았다. 뉴요커들의 발걸음은 함께 살아가야 할 사람과 지역으로도 열려져 있었다. KKR이라는 악명 높은 사모펀드를 통해 적대적 M&A로 큰 돈을 챙긴 다음 뉴욕의 빈민문제해결을 사명으로 하는 로빈훗 재단을 설립한 튜더 존스와 같은 성공한 뉴요커들은 물론 평범한 중산층 상당수가 이 대열에 동참해 오고 있었다. 성공한 2세 한인들이 기부금을 조성하는 Korean American Community Foundation, 1세 한인들의 헌신이 돋보이는 뉴욕 아름다운재단을 둘러보니 뉴욕 한인사회에서도 기부와 봉사의 큰 물결이 일고 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함께 살아가는 사람과 지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을 비롯해 기부문화를 정착시키느라고 헌신하는 단체들이 많이 생기고 있으며 전국 각지에 지역재단 설립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다. 광명에 뿌리 내리고 있는 사람들도 지역에서 함께 사는 이들과 지역문제에 관심을 높이며 자원봉사문화와 기부문화의 큰 물결이 일어날 때다. 이를 위해 누구와도 소통하고 연대하는 아름다운 광명인의 등장을 꿈꿔 본다.

맨하탄의 거리는 가장 큰 성공을 한 사람과 가장 큰 실패를 겪는 사람들이 공존하고 가장 안전한 낮과 가장 불안한 밤이 교차한다. 도대체 이토록 양극화된 이곳이 왜 이리도 활력이 넘쳐 보이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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