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광명시청 행정지원과 박민관 계장

                      ▲ 광명시청 행정지원과 박민관       계장
▲ 광명시청 행정지원과 박민관 계장
“어디선가 무슨 일이 생기면 어디선가 나타나” 무엇이든 척척 해결해주는 광명시 해결사가 있다. 광명시청 행정지원과 박민관 계장(46)이바로 그 주인공. 그의 오지랖은 광명시를 덮고도 남는다. 광명시의 민원현장이면 어디서든 그의 레이다에 포착된다. 이른바 마당발로 모르는 것이 없다.

그의 오지랖은 이번 18대총선을 위해 꾸려진 선거상황실을 운영하면서 백분 활용됐다. 후보자들의 동향과 지역주민들의 현안이나 광명시에서 일어나는 자질구레한 일들도 놓치지 않고 파악하여 필요한 이들에게 실시간 문자로 전송하기도 한다. 9일 있었던 투표일에는 시간마다 투표율과 개표율 및 득표율을 집계상황을 문자로 알려 관심있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업무일 뿐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어디 그런 공무원 만나기가 쉬운가. 그의 오지랖은 민원인에 대한 서비스에도 나타난다.

얼마전 시청 경비실로 찾아온 한 민원인의 경우가 그렇다. 중복부과된 신호위반 과태료 고지서를 수정하기 위해 찾은 민원인이 있었다. 보통 이런 민원인이 시청에서 들을 수 있는 말은 딱 이거다. “경찰서로 가세요.” 하지만 마침 그런 상황을 목격한 박 계장은 경비실에서 경찰서로 전화를 걸어 몇 번의 교환을 거쳐 민원인의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었다. 그는 “공무원의 업무란 것이 작은 노력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전화 한 통화로, 경찰서로 다시 가서 해당부서를 찾아 확인작업을 해야했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그가 공직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이나 사명감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가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 계기도 재미있다. 대학원 재학 시절, 생활비가 떨어져 급하게 아르바이트로 찾았던 것이 공무원이었다. 이후 대학원을 졸업하고도 계속 공직에 남아있게 됐지만, 대학원에서 공부한 전공을 살리지 않고 공직을 택한 것은 ‘자기 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많아서’였다.

                      ▲ 아들과 상해여행길에서 찍은       기념사진
▲ 아들과 상해여행길에서 찍은 기념사진
때문에 그는 노는 일에도 열심이다. 스킨스쿠버나 승마도 그가 즐기는 취미지만 요즘 제일 열을 올리는 것은 여행이다. 계절에 한번은 국내여행을 반년에 한번은 해외여행을 하자는 다짐을 하고 실천에 옮기고 있는 중이다. 애초 여행계획은 11살짜리 아들에게 좀더 넓은 세상을 통해 경험의 지평을 넓혀주려는 교육적 목적에서 시작되었지만 지금은 그에게도 포기할 수 없는 소중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껏 다녀온 곳도 호주, 터키, 중국, 헝가리, 파리 등 전 세계에 걸쳐있지만 그 어느 곳도 허투루 다녀오는 법이 없다. 여행 중 인상적인 것들을 기록하고 카메라에 담아 여행기작성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박 계장의 공직철학은 명확하다. ‘사명감을 떠나서라도 받는 만큼은 일하자는 것’이다. 그는 민간기업에서 일해보지 않은 공무원들은 공무원들의 업무가 어느 정도 노동강도를 가지고 있는지 잘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는 이전에 태광산업에 근무한 적이 있지만 민간기업에 비해 공직은 여전히 편한 직종이라면서 초임시절을 이야기한다.

90년 철산2동에서 일명 오물세를 담당하던 시절 그는 변동사항이 있으면 고지서를 발부하던 도청에 보고해도 시정되지 않고 예전 고지서가 그대로 내려와 도청 공무원과 말다툼을 벌였다. 말다툼 끝에 도청 공무원은 ‘철산2동은 고지서를 발부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하라’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는 전산시스템이 보편화되어있지 않던 시절이라 그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직접 짜서 고지서를 직접 발행하기까지 했다.

또한 오물세 부과 근거자료를 직접 현장을 일일이 방문하여 확인해 80%이상이 잘못되어 수정하기도 했다. 당시 공무원사회에서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굳이 찾아서 하는 일종의 ‘오버’에 해당되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일이 과중하다고 느끼지 못했으며 시간이 촉박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고 한다. 지금이야 많이 나아졌겠지만 공직사회가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운영되었었는지를 일러주는 일화다.

그는 충북영동에서 자라다가 81년 대학입학시절부터 광명에 터를 잡은 후 광명이 새로운 고향이 되다시피 했다. 그는 행정서비스를 통해 광명이 명품도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광명관내에 광명시청만큼 커다란 조직이 없어, 시청부터 혁신적인 모습을 보이면 자연스레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따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행정서비스도 대기업의 광고차럼 간명하다. “작은 차이가 감동을 이끌어낸다”는 것. 공무원의 작은 배려 하나가 시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되새기며, 특히 공무원의 경우는 시민들의 서비스 기대치가 낮아 시민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유리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광명이란 지명 앞에 ‘명품도시’라는 수식이 자연스러워질 무렵, 반드시 박민관 계장을 기억하게 될 것이란 기자의 확신은 절대 ‘오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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