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에 출마하시게 된 동기는 뭔가요?”
“그.. 그게.. 저...”
“설마 공천만 받으면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고 나오신 건 아니겠지요? 통반장 선거도 아니고 그래도 국회의원 선거인데 무슨 생각은 있으실텐데..”
“지금 준비 중입니다”

코미디가 아닙니다. 이번 총선에 출사표를 던진 한 후보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생각 없는 후보자라도 이런 형식적인 질문은 언제, 어디서라도 받을 수 있기에 반드시 명분을 정리해두기 마련이니 그의 답변이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역에서 출마하는 사람으로서 유권자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셈이지요.

비단 이런 현상이 그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우리 정치판에는 ‘대충 문화’가 판을 칩니다. 총선공약에서 한반도 대운하는 빠졌지만 국민들 모르게 비밀조직을 만들어 처리하고 있었답니다. 대운하 반대여론 때문에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 우려되니 일단 공약에서 빼고 나중에 밀어부치자는 것이지요. 대충 유권자를 속이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는 오만불손한 정치행태에서 비롯된 발상입니다.

실제로 한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의 과반수가 대운하 공약이 빠진 것이 한나라당에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오고 있음이 이를 말해줍니다.

잠시 눈속임을 하면 유권자들이 거저 표를 던져줄 것이라고 생각하는 정치판에서 ‘상태가 영 안 좋은 후보자’, 백치 같은 후보자‘가 양산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지도 모릅니다.

정당 공천이 늦어지고 공천 잡음이 격화되면서 유권자들은 후보자들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겼습니다. 전국 어디에서나 구체적인 실천방안도 없이 무작정 남들이 하는 공약 다 베끼고 이것저것 짜깁기해 대충 만드는 후보들이 판을 칩니다. 이것도 해주겠다, 저것도 해주겠다 선심성 공약이 남발합니다.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알아볼 시간이 없으니 아무나 나와도 괜찮고 아무 거나 대충 말해도 상관없습니다.

요즘같은 선거철에는 어린 시절 반장선거가 문득문득 떠오릅니다. 학기 초 반장에 출마하려는 아이들은 일단 자기가 왜 반장을 하고 싶은지, 반장이 되면 무엇을 할 것인지 준비하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호소합니다.

굳이 어려운 말로 표현하지는 않아도 아이들 반장선거에서는 명분과 비전이 분명히 제시됩니다. 하물며 국회의원 후보로 나오는 사람들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준비는 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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