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가는 이웃들 볼 수 없어서.."

지난 7월 광명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인 원광명마을에서 상징적 판결이 있었다. 서울 중앙지방법원이 원광명마을 주민들이 한국전력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주민들의 손을 들어뒀다. 이 판결은 한전의 송전탑과 선로가 주민재산권을 침해한다는 주민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서울중앙지법 정태홍 판사는 판결문에서 “사건의 청구자인 김석산을 비롯한 39명에게 일정금액을 지급하고 원광명마을 인근 철탑과 선로를 철거하라”며 “피고인 한국전력은 철거일까지 해당토지에 대한 임료를 주민들에게 지급하고 소송비용을 부담하라”고 판시했다.

                      ▲ 고압선 밑에서 사는 사람들       - 원광명마을전경
▲ 고압선 밑에서 사는 사람들 - 원광명마을전경
피고인 한국전력. 김석산 통장을 비롯한 원광명마을 주민들은 지난 2005년 11월 한전을 상대로 송전선로로 인한 재산권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이 이번 판결로 인정한 것은 한전이 송전선로와 철탑이 차지하고 있는 원광명마을 주민들의 재산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재판부는 한전이 정당한 이유 없이 원광명마을의 토지에 철탑과 전선을 설치하여 부당이득을 취하고 원광명마을 주민들에게 손해를 입혔다고 적시하며 주민들에게 해당부분들에 대한 이득금반환과 손실분 보상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

1심에서 승소했지만 싸움이 모두 끝난 것은 아니다. 한전이 항소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송전선로를 비롯한 영서변전소 지중화를 이끌어내는 것이 원광명마을 주민들의 목표다.

원광명마을 주민들이 한전이라는 거대한 공기업과 싸움을 시작한 것은 이웃들이 하나 둘 암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부터다. 마을 주민들애게 영서변전소는 생명을 빼앗는 괴물같은 존재다. 원광명마을 주민피해대책위원회 이성근 총무는 “이 작은 마을에서 뇌졸중, 폐암, 유방암, 심근경색, 혈류암 등으로 사망한 사람이 10여명이고 투병생활을 하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20명이 넘는다”고 전했다.

원광명마을 주민들은 영서변전소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암을 유발시킨다며 향후 전자파로 인한 백혈병 발병위험에 대한 피해보상과 문제를 근본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영서변전소 지중화를 위해 소송도 할 예정이다.

고압선 전자파가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에 대해서는 외국에서 인정된 사례는 많고 우리 학계에서도 전자파가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생식기능, 면역체계이상, 백혈병, 행동장애 등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고 있지만 아직 법적으로 그 피해사례를 인정한 예는 없다.
전자파가 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고 그 위험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지만 사태를 결정적으로 증명할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원광명마을 주민들의 소송을 돕고 있는 김태하 변호사는 “전자파가 인체에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인과관계를 입증할만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근거가 아직 미비하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원광명마을 주민들의 싸움이 담배소송의 경우와 같이 쉽지 않은 싸움이 되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전자파에 대한 꾸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시민환경연구소의 최예용 실장은 “전자파가 국제암연구소에서 잠재적 발암물질로 지정되었으며, 네덜란드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이러한 사정을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7월 발표된 단국대 하미나 교수 연구팀이 발표한 자료 역시 AM라디오송신소 주변에 사는 아이들이 타지역 아이들에 비해 2배 가량 높은 백혈병 발병률을 나타낸다고 밝히고 있다.

최예용 실장은 “현재 입증된 인과관계가 없더라도 사전예방원칙에 따라 전자파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관계자들이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면서 “원광명마을 주민들이 한전을 상대로 전자파로 인한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한다면 국내외적으로 의미있는 사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전을 상대로 싸우고 있는 주민들은 광명시가 고압선 지중화 문제에 소극적이고 무관심하다고 불만을 호소한다. 주민들은 광명시가 한전이 아니라 주민 편에서 입장을 대변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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