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정치인들이 문화예술적 마인드가 부족하다는 것은 아마 일반인들의 공통된 의견일 터이다. 심심치 않게 목격되는 애들 골목싸움과 필적할만한 국회에서의 육박전이나, 자신들이 서민들보다 한참 아래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웅변해주는 듯, 쌍시옷자 연발의 구수한 입담을 원없이 들을 수 있는 청문회 따위를 지켜보다보면, 무심코 정치인들이 무용과 언변은 겸비했는데, 다만 예술적 감각만 받쳐준다면 더이상 나무랄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19일 저녁에 치러진 열린우리당 후보자 토론회에서는 이런 의심을 단번에 불식시켜버린 좋은 기회였음에 틀림없다. 이날 후보자들의 억눌려 왔던 창조적 예술에의 욕구가 한껏 분출되었는데, 그 열기는 토론장소였던 평생학습원 세미나실이 인근 상업지구 점포 중 어느 점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후끈하게 달아오를 정도였다. 또한 토론회 내내 즐거운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확실히 ‘예술은 사람을 즐겁게 한다’는 일반론적인 명제도 증명했던 것이 분명하다.

이 날 토론회의 주인공은 예술가 출신에 미술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기도 한 후보자였다. 그는 준비된 질문에 그동안 정치인들이 보여왔던 구태의연한 대답 대신, 즉흥적이고도 창조적인 영감이 충만한 그야말로 쾌답(快答)을 보여주었다. 이를테면 고교평준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표가 많이 쏠리는 쪽으로’라는 명쾌한 대답은 그동안 겉과 속이 달랐던 기성정치인들에 대한 블랙코미디적 예술행위였으며, 경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단언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투철하고도 확고한 의지를 유감없이 보여준 중세시대의 장인적 예술가들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 날의 백미는 무엇보다 상대후보자에게 자신을 이길 방법을 제시해보라며 친절하게 삼지선다로 “1번 치사하게 2번 야비하게 3번 비겁하게”라는 해답을 예시한 초일류적 퍼포먼스가 될 것이다.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퍼포먼스에 실로 기자는 과거 플럭서스를 이끌던 요셉 보이스의 재현을 보는 듯 했는데, 후보자가 아방가르드를 전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감각만큼은 더 이상 충격을 줄 수 없다던 현대미술이 아직은 유효함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었다.

자, 이제 아방가르드적 농담도 여기서 접어야겠다. 아방가르드가 유효한 것은 예술에 한해서이지 정치의 영역에까지 끼어들면 곤란하다. 오죽하면 벤야민이라는 작가는 ‘아방가르드는 예술을 정치화하지만, 파시즘은 정치를 예술화한다’라는 말까지 남겼겠는가. 시민이 정치인들에게 문화예술적 마인드를 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인들이 관용적인 자세를 보여주었으면 하는 답답함에서이지, 정치판을 놀이판으로 만들자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이번 토론회가 지방선거에서는 유례가 없는 권장할 만한 최초의 시도였다는 부분에서 만족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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