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책에서 묘사되는 이원익의 모습은 임진왜란과 같은 국난극복과 대동법 시행과 같은 공적에 치중되어 그려지는 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정작 이원익은 어떤 사람일까, 오늘날 어떤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이었을까 하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역사적 인물의 공적도 중요한 잣대이긴 하겠지만, 어떤 됨됨이를 가진 인물이며, 어떤 성격의 소유자인지 이해하는 것은 보다 본질적인 문제이다. 공적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는 것은 자칫 결과지상주의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조선후기의 선비 남학명은 영남사람들이 당시 이원익과 유성룡을 평가하는 내용을 기록해 놓았다. “이원익은 속일 수는 있지만 차마 속이지 못하겠고, 유성룡은 속이고 싶어도 속일 수가 없다.” 유성룡은 아랫사람의 잔재주나 속임수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 빈틈없는 인물인데 반해, 이원익은 얼마든지 속일 수 있지만 그의 성품과 됨됨이 때문에 속였다가는 큰 벌을 받을 것만 같은 그런 인물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나 잘 알고 신뢰하지 않는다면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이런 성품의 소유자의 리더십을 나는 ‘부드러운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싶다.인조의 묘정[임금의 사당]에 배향할 인물 가운데 이원익이 선정되어 임금의 교서(敎書)가 내려졌다. 국가에서 내려지는 이 공식 문서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몸은 옷을 이기지 못할 것 같지만, 관직에 나아가면 늠름하여 범하기 어렵다. 말은 입에서 나오지 못할 듯하지만, 주어진 일에 임해서는 소나기가 내리듯 처리하여 여유가 있었다.” 왜소하고 어눌한 듯하지만, 다른 사람이 범하지 못하는 카리스마가 있고, 주어진 업무를 신속하게 처리하는 전형적인 행정 관료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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